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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임과 연민은 분리되지 않는다", 다르덴 형제 : <자전거 탄 소년 (2011)> (Take 3)

문화예술

by 밍기적아이(MGI) 2019. 9. 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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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릴의 상태


영화에서 시릴은 항상 뛰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 탄 소년 스틸컷

항상 빠른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속도는 방향성을 전제로 한다.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 빨라진 것이다.

이런 시릴이 멈추는 때 크게 두 번 있다.

아버지의 아파트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시릴은 가만히 있는다. 이 때의 카메라는 시릴의 얼굴을 보여준다. 입을 다물고 시릴은 무거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아빠의 옛 주소를 따라가서 집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한다. 빈 집을 서성이면서 자신이 계속 뛰고 달려와 확인해야 할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하자 그는 정지한다.

그에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 방향성의 상실은 그에게 적막을 안겨준다. 시릴은 그 상황을 견질 수 없다. 무언가를 해야 하거나 어디론가 가야한다. 그것이 그가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다.

편안하기 위해서는 나의 공간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다. 시릴의 심적 공간에는 아버지가 있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를 갈구한다. 그런 상태는 계속 강박증을 낳고 뛰게 한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시릴을 항상 조급하며 뛰려고 한다.

사만다의 역할


영화의 주인공은 시릴이고 카메라는 거의 시릴만을 조명하며 타인들이 와도 시릴의 주변에만 묘사할 뿐이지 제대로 그리지 않는다. 사만다도 영화의 한 주인공이기도 한데 등장하는 순간에는 시릴이 잡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이것이 비중 있는 캐릭터라고 하는 클로즈업이나 여타 다른 기법이나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만다만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굉장히 이질적이다. 편집증적일 정도로 시릴만을 쫓던 카메라가 사만다만을 찍는다. 구태여 이 장면을 넣은 것은 주제의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감독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묘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점은 동의할 것이다.

자전거 탄 소년 스틸컷


사만다는 시릴이 밤에 마약을 파는 불량배와 노는 것을 막지만 끝끝내 실패한다. 막는 실랑이에서 시릴은머리 자르는 가위로 자신을 찌르며 도망갔고 자신도 시릴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기대가 무너지자 사만다는 울게 된다.

그리고 시릴이 있었던 고아원에 전화를 건다. 이 때 관객들은 사만다가 시릴을 포기 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한다. 영화에서 전화를 걸고 바로 시릴에게 화면이 전환되기에 제대로 묘사하지는 않았으나 관객은 고아원 원장에게 위탁모를 포기한다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묘사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상은 시릴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만다와 한 유일한 약속인 불량배와 놀지 않는 것도 어기고 가위로 팔을 찌를 순간 시릴도 사만다가 자신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상상은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까지 할 만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사만다가 하는 행위의 근거는 묘사되지 않는다.

왜 시릴의 위탁모가 되었는지, 그리고 시릴이 사고를 친 것을 다 받아주고 자신을 내치지 않았는지. 여기서 다시 살펴볼 것은 영화는 시릴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상당히 단순한 영화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기 쉽다. 이것은 흡사 시릴의 내면을 형상화한 것 같다. 그래서 시릴을 주로 찍으며 시릴 외의 것은 거의 묘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의 입장이나 혹은 선생의 입장 다른 사람의 입장은 묘사하지 않고 시릴의 내면만을 묘사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릴의 앎의 범위하고도 연관이 된다. 시릴은 현재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거나 추측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는 오로지 그 자신만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만다가 왜 그렇게 까지 자신에게 잘 해주는지 모르는 것이다. 시릴이 모르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묘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만다가 고아원에 전화를 거는 것까지만 묘사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시릴은 사만다가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버려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만다가 고아원 원장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바로 시릴에게 화면전환 된 것은 이렇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만다는 원장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이러한 행동도 시릴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만다만 나오는 장면을 통해 시릴에게 다른 사람의 입장을, 감정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박한
편집 진누리, 노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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