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지만 번호가 없다는 것만을 알게 되고 아빠가 떠났다는 말을 듣고서 어딘가로 뛰어나간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의해 제지당하고 그 때 베토벤 교향곡 황제가 짧게 나온다. 첫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 영화세계로 던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첫 장면은 그 세계를 설명하거나 혹은 상징하는 수단으로 많이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소년의 상태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시작하는 것이다. 소년이 어떠한 상태인지 흔한 자막이나 내레이션 없이 아빠는 떠나갔고 소년은 믿지 못하며 집에 가서 확인을 하고 싶은 상태. 그것이 영화의 첫 장면이자 소년의 현 상태이다.
영화의 제목은 자전거 탄 소년이고 등장인물인 시릴은 자전거를 탄다.
그러나 시릴의 처음 상태는 자전거도 찾아야 하고 아빠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래서 학교에도 빠지고 아빠의 옛 아파트로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사람이 없어서 아파트 건물 안에 있는 병원에서 벨을 눌러 건물로 들어간다. 소년은 아빠를 찾기 위해 병원에 벨을 눌러야 되는 상황에 찾아야 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고아원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도중 ‘사만다’라는 여성을 붙잡으면서 아빠를 만나야한다면서 놓지 않으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환자가 가고 처방을 받는 곳이다. 시릴의 상태는 아버지의 부재로 치유가 필요한 상태, 결핍된 상태이다. 그렇기에 시릴은 병원에 가야만 했고 거기서 어떠한 것이든 처방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
래서 아무나 붙잡으면서 농성을 했고 그 농성의 대상이 바로 사만다인 것이다. 영화에서 사만다는 우연히 시릴에 의해 선택되었다. 어떤 이유나 인과관계에 의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시릴은 사만다에게 도움을 청했고 사만다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릴이 원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연민과 책임은 분리되지 않는다. 어떤 대상에게 연민과 동정을 주는 순간 그 대상과 어떠한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관계는 책임을 요한다. 이것은 다르덴 형제들의 거의 모든 영화에서 동일하며 ‘자전거 탄 소년’도 제외되지 않는다. 사만다는 시릴의 행동을 보면서 동정과 연민을 품었을 것이고 그 연민은 그냥 연민에서 끝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만다는 시릴의 위탁모가 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관객은 영화를 보는 순간 어떤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만다가 시릴을 보는 것과 유사하다. 사만다가 시릴을 보며 위탁모가 되었다면 관객은 영화를 보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영화와 관계된 순간 전과 같아서는 안 된다.
적어도 다르덴 형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영화는 이어진다.
글 박한
편집 진누리, 노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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