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문화] "노래하듯이 오해하듯이", 이장욱 : 《정오의 희망곡》

문화예술

by 밍기적아이(MGI) 2019. 9. 7. 21:08

본문

ⓒ 문학과지성

"빗나가는 화살같이"


나는 소문이기 때문이다


근하신년

-코끼리군의 엽서
 
너에게 나는 소문이다.
나는 사라지지 않지.
나는 종로 상공을 떠가는
비닐봉지처럼 유연해.
자동차들이 착지점을 통과한다.
나는 자꾸
몸무게가 제로에 가까워져
밤새 고개를 들고 열심히
너를 떠올렸다.
속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가 있을 뿐.
나는 아무 때나 정지할 수 있다.
완벽하게 복고적인 정신으로 충만하고 싶어.
가령 부르주아에 대한 고전적인 적의 같은 것.
나를 지배하는
기압골의 이동경로, 혹은
저녁 여덟시 홈드라마의 웃음.
나는 명랑해질 것이다.
교보문고 상공에
순간 정지한 비닐봉지.
비닐의 몸을 통과하는 무한한 확률들.
우리는 유려해지지 말자.
널 사랑해.
 

‘너’에게 ‘나’는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소문이란 무엇인가. 있으면서도 있지 않은. 없으면서도 없지 않은 무엇인가.

소문은 체중이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이것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명랑하게 만든다.

이 일련의 행위들은 어떻게 보면 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우리는 유려해지지 말자’고 시인은 말하는 것인가. 그들이 걸은 행적이 유려한데 왜 유려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에게 사랑이 아닌 것이다.

유려하면 ‘나’는 그대로 소문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우리는 유려해지지 말자’의 전에 있던 문장들은 바로 소문으로서의 ‘나’의 유려함과 정서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그 유려함을 포기하면서 ‘너’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근하신년-코끼리군의 엽서>란 제목은 말 그대로 연서(戀書)이다. 자신이 누구임을 말하고 받는 당신과의 거리가 무엇인지 말한다. 그리고 결론이 사랑이라면 연서의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질을 버리겠다는 선언은 코끼리군이라는 엉뚱한 네이밍에도 그의 순수함이 얼마나 진지한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엉뚱하기에 그가 얼마나 진지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인파이터

-코끼리군의 엽서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에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네.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코끼리군에게 또 다른 엽서가 왔다.

사랑을 고백한 코끼리군은 이제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이 없는 상태이다. 그는 이제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이불킥을 거쳐야 구름과 스파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전에 보낸 연서에 장엄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사각의 링으로 들어가더라도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도 없고 멍하니 바깥만을 본다.

그래도 그는 코끼리군이라는 네이밍을 고수한다. 날 위해 울지 말라는 위트도 부릴 줄 안다. 구름의 지치지 않는 스파링 파트너는 이불킥 따위에 지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지낼 것이다. 코끼리군은 코끼리군에게 돌아가듯이.


오해


나는 오해될 것이다. 너에게도
바람에게도
달력에게도.
 
나는 오해될 것이다. 아침 식탁에서
신호등 앞에서
기나긴 터널을 뚫고 지금 막 지상으로 나온
 
전철 안에서
결국 나는
나를 비켜갈 것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빛이 내 생각을 휘감아
반대편 창문으로 몰려가는데
내 생각 안에 있던 너와
바람과
용의자와
국제면 하단의 보트 피플들이 강물 위에 점점이 빛
나는데,
 
너와 바람과 햇빛이 잡지 못한 나는
오전 여덟 시 순환선의 속도 안에
약간 비스듬한 자세로 고정되는 중.
일생을 오해받는 자들
고개를 기울인 채
다른 세상을 떠돌고 있다.
 
누군가 내 짧은 꿈속에
가볍게
손을 집어넣는다.
 

이제 코끼리군은 하나를 알았다.

바람에게도(자연물), 달력에게도(시간) 오해될 것을. 전철(규칙)에게도 빗나갈 것이다. 오해는 이제 필연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연서가 실패한 것은 우연적인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실은 그런 연서가 성공할 것이라는 것, 자체가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이제 열반에 이른 코끼리군은 쏟아지는 햇빛에 정신이 팔렸다. 아침햇살을 느끼는 클리셰가 여기에서도 등장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방랑하는 보트 피플처럼. 뿌리를 두지 못하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는 이제 잠이 든다. 그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누구이긴 하지만 그는 모를 것이다.

오해를 받듯이 누구를 오해할 것이다. 가볍게.

손을 집어넣듯이.

 

이장욱 시인

 

 박한
편집 노예찬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