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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원이라는 시간을 이기는 방식", 고봉수: <튼튼이의 모험 (2017)> (Take 3)

문화예술

by 밍기적아이(MGI) 2019. 9. 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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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카메라, 동요하는 카메라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카메라의 척추가 철로 되어있는 듯하다. 카메라는 스스로 움직이거나 혹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흔들림 같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흔들리는 것, 움직이는 것은 프레임 안의 인물들뿐이다. 영화는 고정 숏으로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 중 극적으로 시선의 고정을 보여주는 것이 쥐약 소동이다. 어느 인적 없는 곳에서 쥐약을 산 진규가 막걸리를 마시면서 일련의 소동이 발생한다.

충길이 진중에게 날아 차기하고 진권이 다시 날아 차기를 하고 이렇게 인물의 역동성이 제일 두드러지는 장면임에도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다. 오히려 무신경할 정도로 고정되는 숏이 영화를 더 영화로 만드는 인위성을 전면으로 배치한다.

튼튼이의 모험 예고편


   하지만 이 규칙이 어겨지는 장면이 있다.

   혁준이 블랙 타이거 멤버와 싸울 때와 학교 체육장에서 레슬링 시합하는 장면이다. 바닷가에서 지혜와 혁준이 데이트를 즐길 때 오토바이를 타고 블랙타이거 모임에 안 오느냐며 화를 낸 멤버가 온다. 이때 카메라는 이 멤버를 주시하며 따라 움직인다. 이 시점은 충길의 시점을 대변한다.

   사실상 혁준이 레슬링을 한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전의 준거집단이 블랙타이거를 제대로 청산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걸어오는 멤버의 말을 추론하면 그들이 서로 납득할 만한 끝맺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혁준이 블랙타이거로 갈 것인지 계속 레슬링을 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렇다면 충길은 동요할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도 덩달아 동요한다. 하지만 실제로 레슬링 부를 그만두겠다고 한 진권을 대할 때 카메라는 동요하지 않는다. 코치가 그를 회유할 때도 혹은 진권이 그만둔다고 했을 때에도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다. 그것은 충길이 진권을 잘 알고 그가 다시 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준은 그렇지 않으니 흔들린다.
 
   다시 동요하는 카메라가 있다. 혁준과 충길의 첫 시합이다. 이때는 이길지 질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카메라는 시합을 따라서 계속 움직인다. 하지만 이때의 인물들의 움직임은 쥐약 소동 때보다 역동적이지 않는다. 오히려 심심하다고 할 수 있는 시합에 그토록 카메라가 흔들리는 건 그것이 충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혁준이 블랙타이거와 엮였을 때, 승패를 알 수 없는, 외부적 영향으로 방향이 확실하지 않은 장면에서는 저절로 충길과 카메라는 동요하게 되는 것이다.

튼튼이의 모험 스틸컷


   충길의 두 번째 경기, 마지막 시합은 코치가 말하듯이 상대가 누구라도 충길은 자신의 경기를 펼쳐야 한다. 왜냐면, 승산이 없으므로. 영화에서 반복해서 묘사하듯이 충길은 재능도 운도 없다. 5년을 했어도 블랙타이거 사람들보다 약하고 시합 전날에 한 축을 담당하던 진권도 영화에서 따오자면 ‘병신’이 될 수 있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그런 그가 그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처지에 서게 되었다. 어찌 마음이 편안하겠는가. 그런 시합에서 영화는 그들의 경기보다 충길에게 더 초점을 맞춘다. 충길의 일그러진 표정, 넘어가는 모습, 해변에서 달리는 모습. 이 모습은 레슬링 장면처럼 카메라가 시종일관 따라가지는 않지만 흔들린다. 사실 상대방에게는 관심이 없다. 전에 카메라는 승패를 모르는 시합에서 경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충길의 두 번째 경기는 코치도 알고 충길도 안다.

튼튼이의 모험 스틸컷

   어떤 수를 쓰더라도 충길은 질 것이다. 다만,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마지막일 리 없다고. 그래서 카메라는 그들의 경기를 시종일관 따라가는 대신 충길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흔들린다. 충길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마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지나친 고정 숏을 사용하면서 영화에 인위성을 부여하면서도 카메라는 그걸 지켰다. 그리고 불안한 순간에는 아낌없이 흔들렸다. 그래서 고정 숏은 고정 숏의 자체의 효과를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을 부각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그렇다면 고정 숏이 영원성이 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박한
편집 진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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