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영화] "영원이라는 시간을 이기는 방식", 고봉수: <튼튼이의 모험 (2017)> (Take 1)

문화예술

by 밍기적아이(MGI) 2019. 9. 6. 23:17

본문

시간의 무력


   ‘시간이 답’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간의 힘에 대한 찬미가 아니다. 무정함에 대한 탄식이다. 일상은 시간을 뒤에 엎고서 모든 감정을 좀먹는다. 그렇기에 감정을 믿는다는 것은 일상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운과 재능이 없는 몽상가가 대표적이다. 몽상가들은 운과 재능이 없어도 지기는 싫어하기에 생각한다.

   시간을 무력하게 할 수 있는 것에 무엇이 있는가?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에서는 <튼튼이의 모험>처럼 운과 재능이 없는 주인공 성우가 나온다. 성우의 현실은 쓰다. 같이 동거 동락한 밴드 멤버가 고향에 갈 정도로 쓰다. 그러나 그는 버틴다. 잔혹한 시간의 힘에도 버틴다. 성우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술을 먹거나 오입질을 하거나 지방으로 내려가 일상에게 굴복하는데도 성우는 버틴다.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그건 바로 순간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음악 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인희와 함께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 전에 있던 시간과 후에 올 시간을 무력하게 한다. ‘형성된 모든 건 변한다’는 말은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과 시간을 비교하는 사람들은 후자에 더 큰 가치를 두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그것은 찰나에 대한 것을 무의미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짓게 된다. 그러나 그 찰나를 기억하는 것이 영원이라는 시간을 이기는 방식이다.

사랑은 자신에서 오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말했다. ‘사랑(amor)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라고. 사랑의 원인이란 자신의 내부에서, 자신을 근거해 오지 않는다. 이런 사랑을 하는 성우는 당연히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교통비 정도의 분통을 터트릴 정도로 수입이 적어도, 장례식에서 밥이 시원찮더라도 감내할 수 있다.

   그런 성우이기에 음악을 포기할 일은 더욱 없고, 그런 성우이기에 학창 시절 매몰차게 고백을 거절한 인희조차 그와 함께 음악을 한다. 이에 따른다면 사랑은 시간과 같이 오는 것이다. 시간은 사랑과 같이 떠난다.

   그렇다면 시간과 같이 오고 가는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하는 것인가. 순간이 제거된 영원이라면 그럴 것이다. 영원은 어제와 오늘을, 오늘과 내일을 같게 한다. 시간 속에서 순간을 멸시한다. 그렇기에 시간 속에 순간을 건지는 것은 무용(無用) 한 것,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튼튼이의 모험>에서 충길은 어떠한가.

 

 박한
편집 진누리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