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엠넷(CJ E&M)이다. 눈치는 보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은 가리지 않고 도전하고 있다.
슈퍼스타 K로 일반인을, 쇼미더머니로 힙합 마니아층을, 프로듀스를 통해 아이돌 마니아를 건들었다. 이제 "이미 존재하는 팬덤"까지 포섭하려고 한다. 팬덤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앞선 도전적인 성격의 프로그램보다 상업적이다. 자신의 가수를 위해서 헌신하는 팬의 마음을 사겠다는 포장은 돌려말한 것에 가깝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신의 가수를 위해 '이 방송을 보고'(시청률을 올려라), '유튜브를 보고'(조회수를 올려라), '스트리밍을 돌려라'라는 말이 된다. 엠넷은 언제나처럼 갑의 위치에서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불합리한 구조이다. 걸그룹이 선뜻할 이유가 없다. 팬들도 딱히 좋아할 구색도 없다. 과반수의 팬덤은 이 방송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전혀 성사가 안될 것 같은 계약이지만, 엠넷은 이 프로그램을 억지로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강한 팬덤을 자랑하는 SM엔터테인먼트의 레드벨벳(Red Velvet), 최근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합병된 쏘스뮤직의 여자친구, JYP엔터테인먼트의 트와이스(TWICE), 있지(ITZY), 프로듀스 48의 아이즈원(IZ*ONE) 중 한 그룹도 섭외하지 못했다. 엠넷이 걸어놓은 슬로건 "'K-POP 대표 아이돌'들이 한 날 한 시에! 새 싱글을 공개하는 "컴백 전쟁"에 어울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박봄대신 청하를 넣어야 하고, 위의 그룹 중 최소 두 그룹은 참가를 했어야 했다.
반대로 참가하는 그룹들과 소속사를 보자.
우선 AOA다. 소속사는 FNC엔터테인먼트로 엔틀라잉(N.Flying)의 <옥탑방>을 제외하면 가수로 히트곡을 만들어낸지 꽤 시간이 지난 그룹이다. 재정적으로 연속적인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AOA 그룹 자체의 성적도 예전만 못하다. 초아가 떠나고 AOA는 사실상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2016년 방영된 방송 때문에 알려진 역사의식 관련 논란(설현, 지민)은 아직도 대중들은 언급하고 있다. 또 2018년 민감한 젠더 문제에 설현과 유나가 비공식적으로 엮이게 되었다. 이 영향은 최신작 《빙글뱅글 (Bingle Bangle)》의 판매량을 31% 하락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은 후배 걸그룹 우주소녀(WJSN), 드림캐쳐, 오마이걸, 있지, 이달의소녀(LOONA) 등에게 밀리는 성적이다.
러블리즈는 "러블리너스"라는 구매력 좋은 남초 팬덤이 존재한다. 걸그룹에게 남성 팬덤도 중요하지만 여성팬이 많아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지만 러블리즈는 이를 역행하는 그룹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초인만큼 스트리밍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며, 새로운 팬을 유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이것은 그룹을 유지하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룹상의 문제보다는 소속사의 힘이 없다는 점이 엠넷의 장난에 참가하게 된 원인으로 보인다. 비상장 중소기업 울림엔터테인먼트로 2013년 SM C&C와 인수되고 2016년 분할되었다. 이때 넬과 재계약을 실패하고, 인피니트를 제외 큰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2018년 아이즈원의 멤버로 2명을 배출하는 성과를 얻었지만 그 역시 엠넷의 손바닥이고, 러블리즈의 퀸덤 참가도 거부할 상황도 아니었다.
오마이걸은 러블리즈와 같은 노선을 걸으면서도 묘하게 홍보가 잘 되지 않은 그룹이었다. 음악성이라는 대표 타이틀이 있었던 러블리즈에 비해 오마이걸은 중심을 잡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코어 팬덤을 많이 놓치게 되었다. 2019년 첫 정규앨범을 내면서 비밀정원의 인기를 재현해냈지만, 한국보다는 일본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일본활동은 한일 경제문제로 제대로 진가를 보여주지 못했고 소속사는 말하지 못할 타격을 받았다. 소속사인 WM엔터테인먼트는 모든 그룹의 소속사들보다 영세하다. 더 많은 자본만 있었어도 잘 될 그룹이 많다는 점에서 키워내는 능력은 탁월한 편이다. 하지만 언제나 돈이 문제이다.
(여자) 아이들은 화제성을 가져올 핫한 신인이다. 본인들의 색과 '걸스힙합'이라는 장르를 잘 녹여낸 그룹으로 평가받은 그룹이기도 하다. 마마무와 러블리즈에 이어 최근 기세가 좋은 그룹이기도 하다. 그룹의 인지도가 높지만 소속사의 힘이 약할 경우 엠넷의 좋은 협업자가 되거나 먹잇감이 된다. 큐브는 본래 2019년 (여자) 아이들과 라이관린을 선두로 중국시장을 공략하려고 했으나 라이관린은 큐브를 상대로 전속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시장 공략은 제동이 걸렸고, 소송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큐브에 CLC나 가을로 가는 기차라는 두 걸그룹도 존재하지만 엠넷이 요청한 그룹은 당연히 (여자)아이들이었을 것이다.
마마무는 위 라인업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사전투표에서도 다른 그룹들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식으로 투표 1위를 얻어냈다. 사실상 결과가 뻔하게 만들어버린 그룹으로 왜 참가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룹을 알리기 위해서보다는 소속사의 영향이 크다. RBW의 수장 김도훈은 친(親) CJ E&M성향이며, 마마무의 유통사도 CJ E&M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엮여있다보니 마마무는 당연히 참가하게 된 것이다.
박봄은 재기(再起)를 위한 컴백이다. 하기 싫지만 끌려온 것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방송인 것이다. 긴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는 많은 방송을 뛰는 것이 좋고, 만들어진지 2년된 소속사 역시 이름을 알리는 게 좋을 것이다. 논란이 있기 때문에 리스트 중 마지막에 공개된 보컬이고, 걸그룹이 아닌 유일한 솔로이다.
『퀸덤』은 결과를 알 수 있는 컴백 전쟁이다. 메이크스타(MAKESTAR)에서 미리 실시한 투표에서도 마마무가 63.3%의 득표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여기서부터는 '이렇게 뻔한 수를 엠넷이 예상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이돌학교』와 같은 실패를 겪었던 엠넷은 손해 볼 장사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퀸덤』은 아무리 실패해도 각각의 팬덤들 덕분에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사업 아이템이고, 첫 방송 시청률 0.5%라는 기록으로 이를 증명해냈다. 여기서 엠넷은 『퀸덤』을 넘어서 『킹덤』에 대한 확신을 얻었을 것이다.
또 그들에게는 '고작 시청률 0.5%?'가 아니다. 트와이스, 레드벨벳, 블랙핑크, 있지, 여자친구, 청하가 빠졌는데도 0.5%나 나온 게 된다. 이것은 굉장한 의미로 작용한다. 걸그룹팬덤보다 활동력이 뛰어난 보이그룹 팬덤이라면 이 수치 이상을 얻어내게 된다는 뜻이다. 방탄소년단(BTS), 세븐틴, 엑소(EXO),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뉴이스트가 빠져도 이 이상의 시청률을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그리고 위 그룹 중 한 그룹만 참여하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경쟁'이라는 엠넷 최고의 상술은 이제 이미 만들어진 팬덤까지 공략하려고 한다. 이런 경쟁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일선상에서 출발하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스타를 만드는 것도 아니며, 1위 팀을 제외하고는 과반수 이상의 팬덤은 만족을 얻을 수 없다. 누군가는 최하위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불명예 하차'를 해야 하는 이 『퀸덤』은 엠넷의 장난에 불과하다. 더 상업화되고 실패할 수 없는 방향으로 말이다. 또한 아이돌이었던 박봄의 참가는 이 프로그램의 신뢰도를 크게 훼손한다. 재미나 형편성보다는 엠넷이 쉽게 다룰 수 있는 그룹들로 짜집기 했고 그 팬덤들을 볼모로 잡은 『킹덤』의 프로토 서바이벌 프로그램만 될 뿐이다.
엠넷은 엠넷만 생각한다. 안그래도 서로의 컴백을 의식해서 컴백하려는 걸그룹이다. 이들을 절벽 위로 몰아 누가 더 불쌍해지나 관전하려는 태도이다. 이는 1화 방송에서 무대보다는 무대에 오르지 않은 가수의 리액션, 말에 집중하는 편집에서 파악할 수 있다. 팬덤은 그저 시청률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걸그룹이 더 괴로워할수록 크게 웃는 엠넷의 악취미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난장이 전쟁이 맞다면 컴백'전쟁'이란 워딩이 웅장하고 거대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퀸덤』이 실패에 끝나더라도(그렇게 생각도 안하겠지만) CJ E&M은 또 다른 카드를 준비했다. tvN에서 추석기간 동안 방송될 파일럿 프로그램 『V-1』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이기에 실험성이 짙은데, 일단 타이틀이 "걸그룹 NO.1 보컬 서바이벌"이다. 언제나 그렇듯 걸그룹이 먼저이다. SBS출신 박상혁이 연출을 맡았고 강심장을 같이 맡았던 강호동이 진행을 한다. 2016년 JTBC에서 방영했던 『걸스피릿』과 유사한 포맷인데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해 본 적이 없는"이라는 조건이 붙여있었다. 물론 참가자들이 인지도적인 면에서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JTBC는 파일럿이 아니었고, tvN는 파일럿으로 간을 본다는 점이다. 또한 참가자도 24명으로 2배나 된다. 다양한 그룹의 다양한 보컬이 등장한다. 추석기간동안 『V-1』이 좋은 성적이나 새롭게 진행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면 남자아이돌로 재기획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설날에 또다른 파일럿으로 재등장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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