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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움 받을 용기 : 마음의 쉼표

오피니언

by 대학매거진 영글 2019. 10. 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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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용기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용기[명사] :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

 

이 책의 제목에서도 용기란 단어를 사용했듯이,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가 그 주를 이룬다.

다양한 이론들 속에서 빛이 나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용기가 아닐까. 그 단어는 모든 것을 희망적으로 바꾸며,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으로써 우리에게 작용하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미움 받을 용기란 생소하면서도 자연히 눈길이 가는 제목인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움 받지 않기를 원한다.

누군가의 눈 밖에 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괴롭고 외로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번쯤은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도,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미움을 받는 것용기라는 단어를 덧붙여 놓은 것은 아주 흥미로운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건 역설적으로 미움에 직면하겠다는 뜻이니 말이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쩌면 용기를 내기까지의 용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그게 이 책에서 말하는 용기의 첫 걸음이다.

 

아들러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여러 갈등에 대해 통찰력 있는 해석을 해주는 철학자와 그의 입장에 반발하는 청년.

이 책은 두 사람의 대담 형식으로 전개된다. 청년은 끊임없이 자신이 경험했던 고통과 갈등, 인간관계 등을 말하며

철학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끝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청년의 마음을 돌렸던 철학자의 말에는 과연 어떤 힘이 있던 것일까.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우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이 책을 소개하려 한다.

 

인생 그리고 행복

새로운 시작을 위해

1.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

 

사람들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끔찍했던 기억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추억이 되어 미소 지을 만한 원동력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과거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 다르며, 각자 보는 세상 또한 다르다.

각자 과거를 떠올려 보라. 아마 행복했던 기억, 슬펐던 기억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것이다. 그것들을 단순히 과거라고 묶을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그 과거에 잡혀있다고 생각했다. 다르게 말하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과거에 연연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고치고 싶다면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생각을 고치면 된다. “과거에 이러한 일 때문에 현재의 나는 이런 모습인 거야!”라는 사고방식을 뒤집으면 된다는 뜻이다. 아들러는 트라우마를 완전히 부정했다. 과거의 일이 현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영향이 크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의 모습은 내가 선택한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란 이야기다.

는 어릴 적 소심한 성격 때문에 한 동안 나를 싫어했던 적이 있다. 내가 그다지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은 나의 열등감이 되기도 했다.

 

내가 소심하다고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담임선생님들이 하나 같이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써놓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게 불만이었고, 그래서 나는 소심하기만 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완벽하게 인과관계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달리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큰 일에서 빠지기 위해 소심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랐다. 그래서 학급원을 하거나 발표도 알아서 척척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는 나서는 것이 싫었다. 수업 시간에는 조용히 수업을 듣고 남의 말 경청하고 싶었으며, 그 외의 일에는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소심하다라는 것을 핑계로 부모님의 기대를 번번이 좌절시켰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때는 그게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미움받을 용기본문

 

어떠한 편견이 주변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자.

생각을 고치는 일에는 확실히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용기를 갖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니까, 조금만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용기를 갖는 건 어렵지만, 할 수 없는 일은 아니까 말이다.

 

2. 남과 나, 그리고 우리, 열등감을 가져도 괜찮다.

리는 남의 시선을 얼마나 의식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타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는 배고프므로 밥을 먹는다.’와 같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 않을까.

 

우리는 무관심 속에 살면서, 끊임없이 관심을 요구하고 있다. 세상은 점점 소통이 단절되고 있는 동시에 수도 없는 대화가 오고 가고 있으며, 진정한 의미를 찾기 힘든 만남만이 우리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관심도 없으면서, SNS상에서는 끊임없이 좋아요를 요구하고 있다. 직접 만날 수 없는 오프라인 친구들만 가득할 뿐이며, 직접 만난다고 하더라도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서 액정 속 친구와 다른 대화를 하기 급급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아들러가 이야기 했듯이, 우주 공간에 혼자 남겨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타인에게 욕을 하거나 상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나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완벽하고 싶었다. 어느 누구에게든, 적당한 온도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든 나에게 호감이길 바랐고, 그러나 선은 넘지 않기를 원했다. 깊은 관계를 맺는 순간 나를 다 보여주게 돼 버릴까봐. 그래서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들킬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길 원한다. 나도 그랬다. 끊임없는 우월 추구는 오히려 내가 열등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 부작용으로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다. 인간관계가 허무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실은 내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비교하는 기준은 늘 이다. 그 기준이 가 된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인생을 달리기로 비유해본다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모두에게 출발선은 같지 않다. 어떤 이들은 저만치 앞서 나간 곳이 출발선일 수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자동차를 타고 있을 수 있으며, 또 어떤 이는 끌고 가야할 수레의 무게가 상당할 수 있다.

 

그러나 달리기를 한다는 조건은 똑같다. 그러니 남들과의 비교로 더 이상 실망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자. 내가 해야 할 몫을 잘 해내면 그만이다. “나는 돈이 없어서 좋은 학교에 못 갈 거야.”같은 말은 이제는 핑계일 뿐이다. 그 말은 돈이 많으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문득 이정하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 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는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 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험난함이 삶의 거름이 되어전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다만 들키지 않기 위해, 슬퍼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위해, 그저 묵묵히 참고 견뎌내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더더욱 열등감은 가져도 괜찮은 것이라 말하고 싶다. 이것만큼은 아주 절실하게 아들러를 지지하고 싶다. 당신을 괜찮다고 다독여주기 위해, 그리고 당신은 괜찮은 삶을 살아왔음을 증명해주기 위해.

 

행복해지려면 미움 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 순간에 달라질 걸세.

 

-미움받을 용기본문

 

위 철학자의 말처럼, 우리에게 미움 받을 용기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남들에게 미움 받기 싫고, 자신이 상처 받을까 두려워서. 그래서 그저 그런 인간관계를 유지했던 건데, 그게 오히려 행복하지 않은 삶을 준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놓고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지에 대해 늘 생각했다.

지금부터 미움 받을 용기를 가져보려고 한다. 진짜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시 시작될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3. 지금, 여기, 현재를 살아라.

 

아들러는 지금, 여기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 말은 과거는 현재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또한 인간을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이므로, 그런 듯하다. 나는 그런 그의 주장을 볼 때마다 내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들러의 모습과 키팅 선생의 모습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영화 속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잃어버린 꿈과 낭만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끊임없이 “Carpe Diem, Seize the Day!(현재를 즐겨라, 오늘을 잡아라!)”하고 말한다.

나 자신이 있어야 내 인생이 있으며, ‘현재의 나가 존재해야 미래의 나가 존재한다는 것. 영화 속 키팅 선생과 아들러는 닮았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일은 이제 벗어버려야 한다.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한다. 결국 인간이 인생을 사는데 있어 최종 목적은 행복추구니까 말이다.

한참 궁금했던 것이 있다. 인간은 늘 행복을 추구하는데, 왜 행복하지 않는 걸까?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 답이 나왔다. 인간은 행복에 집착하고 있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차례대로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부터 시작된다. 이 질문에서 올바른 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행복은 상대적이며, 상당히 주관적이다. 남들이 볼 때 그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쉽게 말해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다. ‘이 그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인생에도 길잡이 별이 필요하네.

그 별은 이 방향으로 쭉 가다 보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절대적인 이상향이라네.

-미움받을 용기본문

이 책은 아들러의 이론에 완전히 매료되게 만든다.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에서, 청년의 입장이었던 나는 어느새 철학자의 이야기에 완전히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청년이 변화하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청년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더욱이 현대 사회를 살아간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청년의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었고, 해답을 원했기 때문에 철학자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러나 철학자는 정답을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 답은 스스로 찾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너 자신이 선택하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인생이 단순하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 행복을 찾으려고 길을 나서는 것부터, 용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앞서 이야기 했듯, 사람은 각자 보는 것이 다르고 경험한 것이 다르며 그렇기에 각자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 또한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진정한 자유를 얻는 동시에 행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행복이란, ‘로부터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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