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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여행을 떠나고 싶은 그대, 자그마한 기준을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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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학매거진 영글 2019. 9. 1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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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여행 가고 싶다'


무의식중에 참 많이 내뱉는 말입니다. 물론 제가요. 여행이란 거, 좋죠. 지긋지긋하고, 나를 옭아매는 탁류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서 여기저기 새로운 세상을 거닐고 여유를 만끽하는 그런 여행. 하나 더 있어요. 아주 강력하면서도 달콤한 이유가.

'기차표를 예매해 놔서…'라든지…' 라든지

'지금 타지(혹은 해외)라서요' 같은.

아무도 나를 불러내거나 강제할 수 없거든요. 그저 삶의 패턴 그 범위 밖에 있다는 이유만으로요.

'체험'이나'도전' 같은 여행보다는 '도피' '피신' 같은 여행에 더 갈급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부터 순수하게 소비하는 여행을 잃은 걸까.

초등학생 때는 말이에요, 소풍 전날이면 잠도 설치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김밥 말고 버스 옆자리는 누구랑 앉을지 이런 걸 고민하면서 구름길을 걸어 등교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날은 전날 잠도 설쳤는데 일찍 일어나서 누구랑 앉을지 같은걸 고민해야 하는 감정 소모도 많고 체력 소모도 많은, 게다가 도시락도 있어야 하는''인데 말이죠.

'여행' 이랑 '소풍'이 어떻게 같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을 깎아내리지 말라거나.

오랜 시간 준비해서 노력과 정성을 들이는 여행이 어떻게 한순간 꿈같은 소풍이랑 어떻게 같아?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소풍과 여행은 다를 게 없어요. 우리의 만족은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것 아니던가요? 매일 선생님과 마주 앉아 공부만 하다가 밖에 나가 도시락 먹는 날과 매일 사람 사이에 치여 일만 하다가 잠깐 바람을 맞는 날. 생각보다 많이 비슷하죠?

그저 나이를 먹고 환경이 변하고, 머리가 커지고 기준이 높아진 것 아닐까요.

'이 정도는 돼야 여행이지'라거나

'날 잡고 떠나는 맛이 있어야지' 같은.

그걸 만족하는 여행만이 안식이고 휴식이 되어버리는 거죠.

그래서인지 우리는 일상보다 '도피'와'피신'

더 많은 노력과 힘을 들여야 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예전의 그 소풍과는 참 다르죠. 그래서 저는 '소비'를 위한 여행을 소풍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소풍은 '바람을 거닐다'라는 뜻입니다. 어때요 비슷하죠? 그렇지만 이제 소풍逍風 말고 소풍小風을 떠나는 거예요. 나 혼자서 혹은 남들이 만든 기준으로 짜인 여행이 아니라, 원하는 시간에 훌쩍, 설렘을 소비하는 그런 소풍.

물론, 우리가 꿈꾸는 여행이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상상과 망상의 줄타기를 하는 여행 속에서 맛보지 않아도 되는 우울-', 나는 못 가는데' 같은-에 빠지지 말자는 뜻이죠. 그래요, 학교 잔디밭이든 집 앞 공원이든 돗자리 들고나가서 말하는 거예요.

'지금 타지에 와서!'

잔디밭이 사무실이나 강의실은 아니니까 말이에요.

우리 조금 '기준'을 내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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