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뒤, 미지의 시간에 ‘뒤 돌아본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시간의 연속성에서 우리는 앞으로만 나아간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공평히 안타까운 존재다.
인간이 그렇게 인생이라는 시계의 작은 부품이라 할지라도, 앞으로만 가는 나는 생각해본다. 뒤돌아보는 시간. 스스로가 재고하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과거’. 반추하는 이가 없다면 ‘없음’조차 존재할 수 없는 그곳에 대해.
‘뒤돌아본다.’
뒤돌아본다는 것은 내게 꽤나 용기가 필요하다. 과오도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이름도, 웃음도, 절망도 오롯이 맞이해야 한다. 세계란 그런 것이다. 취사선택이란 없다. 쏟아져 나온다. 분명 하나 끄집어냈을 뿐인데 라푼젤의 머리카락처럼 끝도 없이 엉켜 나온다. 아래로 아래로, 탑에서 밑바닥으로, 정상에서 심연으로 인도하는. 지난날을 반추하며 나는 나와 마주선다. 마주보고 맞이한다.
안심은 안일을 안일은 안식을 안식은 머무름을 허락하더라. 나쁜 것도 나쁠 것도 없었지만 과거는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석연치 않은 시간이었노라. 잡고 싶은 것은 없지만 잡힌 것이 없으면 서러워지는 나는, 서러운 인간이었다. 사실 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잡고 싶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인간이었다. 둘 다 서럽기는 매한가지다.
문득 나는 내 스스로에게 서럽고 게으른 인간이 되기는 싫었다.
모든 감정들이 채워지고 재워져 잔이 넘치고 나면 삶에는 그렇게 ‘문득’이라는 시간이 찾아온다.
노래 부르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나는, 서러움으로 삶에서 덮어두었던 ‘었던’이라는 말을 도려내고 소망을 풀어놓을 수 있는 ‘자유’로 뛰어들었다. 모든 것을 그만 두었다. 회사도, 일도, 안정도. 나를 안식하게는 만들지만 서럽게 만드는 그 안정에서.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기대고는 있었던 그 안정에서. 그런 면에서 나는 위선자였을지도 모른다.
‘미래’ 그리고 없음이라는 말조차 무의미한 세상 ‘과거’. 그 가운데 무거운 자유의 짐을 진 ‘현재’의 내가 서 있다. 자유는 무한의 시간, 채워지지 않는 우주. 그 여백이 나에게는 짐이더라. 나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솔직한 태초의 마음으로 태양 아래, 그 짐을 오롯이 메고 서 있다.
한 해가 저물기 전 우리 모두 공평하게 서 있는 기점,
3개월.
우리는 공평히 안타까운 존재지만 또 공평히 신적인 존재다. 신의 세상 ‘미래’에 대해 우리는 ‘예측’이라는 카드를 꺼낼 수 있다. 신의 산물, 인간에게 숨을 불어 넣으신 신의 온기를 타고 잠시 그의 세계를 마주하는. 그것을 위해서는 잠시 현재 나의 시간을 담보로 맡기면 된다. 그것뿐이면 모두 순리 그대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반인반신이다.
나는 이곳, 기점에서 눈을 감고 미래의 나를 바라본다.
자유는 무한한 시간, 채워지지 않은 우주. 하지만 창조주는 겁내지 않았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나는 나아간다. 어떤 걸음이라도 가치 있으리. 외쳐본다. 안정이 나에게 두 팔 벌려올 그 시간을 위해 더 크게 외치고 나아가본다. 어떤 방향으로 걸어 나가든 그것은 한 세계를 창조하는 창조자의 걸음이다. 걸음 하나하나마다 개척자의 걸음이요, 길 하나하나마다 피어나는 꽃길이다. 신의 숨 하나에 온 지구를 잠식한 생명체 만들어졌듯, 나는 나의 숨결을 걸음을 인생을 응원해본다. 더 크게. 더 간절히.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3개월 뒤의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 3개월 뒤의 나에게 나를 보낸다.
3개월 뒤를 뒤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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