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립구도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기계과학 문명과 자연의 대립일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자연을 이용하고 무차별하게 파괴하는 모습은 그의 영화에서 보이는 가장 보편적인 주제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과학과 자연의 대립이라는 이중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파괴로 인한 상실이라는 이념적 가치의 큰 틀 속에 파괴를 하는 것도 상실하는 것도 인간임을 말한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는 처음에는 이념과 이념의 싸움처럼 보이다가 결국 인간과 인간의 싸움으로 돌변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라퓨타는 원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지역 중 하나다. 소설 속의 라퓨타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과학이 매우 발전했으며 섬이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하고 지상의 섬나라가 반기를 들면 벌을 준다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부 이목구비가 뒤틀려 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놓은 해답이란 것이 양쪽의 머리를 반씩 쪼개서 합친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애초에 걸리버 여행기는 잉글랜드의 고위층을 한심하게 표현한 풍자소설이다. 이는 라퓨타의 뜻이 스페인어로 창녀(La Puta)라는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위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다. 극 중 라퓨타는 과거에 성경에서 나온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하늘의 불, 인도의 라마야마에서는 인드라의 화살이라고 불리며 하늘에서 세계 전체를 지배하면서 불복종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 부유도로 나온다.
라퓨타가 가지고 있는 여러 설정 중에서 하야오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비행이었을 것이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현대 문명의 진화와 발전의 산유물이다. 그의 영화에서 비행이라는 소재는 끊임없이 나온다. <붉은 돼지>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돼지가 나오고 <바람이 분다>에서는 영화의 내용자체가 ‘호리코시 지로’라는 비행기 설계사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하야오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념이 반전(反戰)임을 그의 영화에서 수 없이 볼 수 있지 않은가. 전쟁 무기의 혁신을 가져온 비행기라는 소재가 그의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됨은 아이러니하다. 그 이유는 비행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현대 문명의 발전과 파괴의 양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항상 같은 층에서 살아온 인간들이 누군가의 위에 (날아) 올라설 때 생기는 성취감은 우세감으로 이어지고 곧 복층의 구조를 활용한 지배욕을 유발한다.
이 영화의 전개는 라퓨타를 향한 여러 사람들의 상승의 욕망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라퓨타 자체의 존재를 찾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는 파즈와 보물이 목적이었던 도라와 달리 무스카는 라퓨타가 가지고 있는 ‘성’이라는 속성에 집착한다. 라퓨타가 천공의 성인 이유는 무엇일까? 성의 원시적인 목적은 자기방어 본능에 의한 요새였다. 그러나 경제의 발달과 함께 인간사회의 계급화가 진행되어 권력자가 출현하자 권력자의 주거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이때부터 성은 상위 계급과 하위 계급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성은 층이 나눠진 곳에 설치된 단절이고 미래에 하위계급의 상승을 암묵적으로 막는 경계다. 극 중 라퓨타는 우수한 전쟁기술과 과학을 토대로 만든 성이다. 이 성이 세계를 정복했다는 설정이 과거 독일과 일본이 군수산업을 바탕으로 약소국을 침공한 것을 떠오르게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시타에겐 라퓨타가 고향이라면 무스카에겐 ‘성’이다. 무스카에게 라퓨타란 자체로서의 경이로움이나 만족감의 결정체가 아닌 성의 활용에 의한 파괴력의 결정체다. 무스카는 자신이 그런 왕국의 혈족이라는 점이 다시 한번 지배계급의 최정점에 서게 해주는 초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라퓨타는 멸망했고 무스카가 그 길을 따라가다가 멸망하는 모습은 마치 2차 세계 대전 후 군국주의 국가들의 몰락과도 비슷해 보인다.
영화의 초반 장면부터 라퓨타를 찾기 위해서 군 세력과 경쟁하는 도라도 무스카와 다를 바 없이 보인다. 도라는 무스카와 동일하게 라퓨타를 향한 상승욕망이 가득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라가 관객들에게 친근하고 선한 인물로 보이는 이유는 파즈와 시타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무스카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을 지배하고 활용하려고 하는 반면 도라는 그들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해주고 일원으로 받아들여준다. 시타의 ‘인간은 대지를 떠나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의 뜻은 본래 인간은 모두 다 같은 층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도라가 파즈와 시타와 함께 모험을 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도라의 비행선에 그들을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이다. 무스카가 아래를 지배하기 위해서 비행하는 반면 도라는 파즈와 시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비행한다.
도라의 비행선에 올라탄 파즈는 극 중 상승 욕망이 가장 뚜렷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끝까지 주장하다가 결국 증명하지 못한 라퓨타의 존재를 밝혀 내는 소명이 있다. 어쩌면 파즈에게 상승의 욕망이 간절했던 이유는 상승의 꿈을 혼자서 꾸던 장소가 가장 아래인 광산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금화를 받고도 시원하게 던지지 못했던 이유를 봐도 광산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상승에 대한 욕망을 이루게 해주는 대상은 하강하는 시타다.
시타는 극 중에서 상승의 욕망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시타를 움직이는 동력은 라퓨타의 발견이 아닌 파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선택의 1순위는 파즈다. 그녀에게 라퓨타는 옛 고향일 뿐이다. 시타가 원하는 것은 고향이 아닌 인간적 연대다. 시타가 자신의 고향을 자신의 손으로 부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파즈가 있어서다. (잘려진 시타의 머리카락은 소중한 것의 희생을 뜻함이다.)
그들이 라퓨타를 파괴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같은 층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비행(飛行)함으로써 비행(非行)을 저지르는데 사용되는 라퓨타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해서이다. 그래서 둘은 상승의 욕망보다는 하강의 순리를 택한다.[1] (시타의 이름은 아래를 뜻하는 일본어인 ‘시타’에서 따왔다. 동시에 파즈의 이름은 일본어로 깃털과 비슷하다. 높이 비상하지만 다시 내려오는 파즈와 참 어울리는 이름이다.)
파괴된 라퓨타에서 둘을 구해주는 것이 라퓨타의 하층부에 있는 나무의 뿌리다. 나무[2]는 자연의 사물 중 생명의 중심축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알려진 상징이다. 뿌리가 지하에 뻗치고 나뭇가지가 천공에 뻗치기 때문에 많은 민족 문화 중에서 땅과 천공을 연결하는 우주축이라고 여긴다. 즉 나무는 다른 층인 상층과 하층을 이어주는 가교다.
그러나 라퓨타의 상과 하는 철저하게 분리 되어있다.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하는 뿌리를 아래에 두고 그 위에 나무를 둘러싼 성을 만들었다. 이는 마치 대지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비행을 하는 것과 같다. 그 비행은 부작용을 낳았으며 오히려 생명을 해치는 반작용이 될 뿐이다. 분리로부터 야기된 폭력에서 파즈와 시타를 구원하는 것은 최하층의 나무 뿌리일 수밖에 없다.
기계문명의 발전은 타락한 인간성과 무한한 발전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태어난 시기의 일본은 이 두가지 양면성을 함께한 시기였다. 자신들이 이룩한 발전으로 인해 성을 만들었던 나라가 똑같이 다른 성의 폭탄을 맞고 멸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영화는 단순히 자연이 인간 문명보다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이 자연의 바람을 타고 비행하는 파즈와 시타, 작은 비행선을 타고 있는 도라가 손을 맞잡은 장면에는 인간은 이미 이룩해 놓은 문명과 어떻게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하야오의 현실적인 주장이 담겨있다. 다만 현재 문명을 이끌어가는, 이미 비행하고 있는 어른들은, 지금은 작아 바람을 타고 있지만 언젠가 어른이 될 아이들에게 올바른 비행이 무엇인지 가르쳐줄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경고하는 것이다. 잘못된 비행이 야기했던, 과거 자신들이 만들었던 천공의 성의 재건축을 경계하라고. 가끔 하늘 위에 있는 라퓨타의 나무를 바라보며 비행하라고. 그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 비행기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1] <지브리 애니메이션② > 천공의 성 라퓨타 - 상승하는 욕망과 하강하는 순리로 그린 비행. by. SoftWater
[2] 종교학대사전 출처
글 파도일(견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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