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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리천장을 뚫고 훨훨 날아갈 모든 영지에게, <벌새(2019)>

문화예술

by 밍기적아이(MGI) 2020. 3. 1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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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이다. 이 시간 동안 한국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가부장제의 한국사회에도 ‘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그램을 통해 남편이 육아하고 집안일을 하는 게 어색하진 않은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더불어  2018년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시작으로  여성들이 미투운동을 통해 성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보다 높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의 1994년은 가부장적인 아버지, 학벌에 따른 계급주의 그리고 성차별이 문제 되지 않던 사회였다. 영화 <벌새>는 그 시대 모습을 중학교 2학년인 은희의 시점에서 묘사하고 있다.

벌새 영화포스터

1994년, 가장 보편적인 은희로부터.

위 문장은 영화 포스터 우측 하단에 있는 멘트이자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이다. <벌새>는 은희 개인의 삶에서 시작하지만, 보편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마무리한다. 이 영화가 한 사춘기 소녀의 개인 서사가 아니라는 점은 여러 연출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에게 떡을 선물하기 위해 한자학원에 찾아온다. 카메라는 은희의 시선을 따라 책장을 보여준다. 그러자 두 권의 책이 눈에 띈다. 『가부장제이론』, 『페미니즘과 계급 정치학』. 이 두 책의 제목은 <벌새>의 사상 그 자체이다. 감독은 단순한 소품을 통해 영화의 방향성을 잘 보여줬다.

영지 선생님은 어색해진 은희와 친구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그 노래는 노동자들의 서글픔을 담은 민중가요 <잘린 손가락>이다. 그리고 영지는 운동권 학생이다. 이 연결고리 또한 영화가 의도한 설정이다. 이런 설정들을 통해 영지는 단순히 은희의 성장을 돕기 위한 인물을 넘어서 그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벌새 스틸컷 중에서

은희 병문안을 온 영지는 이렇게 얘기한다.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마.”

앞서 언급한 복선들과 이 대사를 연결하자면, 영지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이다. 은희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리고 폭력의 대물림을 보여주는 오빠에게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당한 피해자이다. 이런 은희에게 영지는 말한다. 부당함에 굴복하지 말고 맞서 싸워라.

벌새 스틸컷 중에서

영화의 후반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이 사고로 인해 영지는 사망한다. 그 대교 위엔 은희의 언니와 영지 둘 다 있었다. 왜 이 영화는 은희의 언니는 살고 영지는 죽게 한 것일까?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성수대교붕괴사고는 부정부패가 만들어낸 예고된 인재사고라 설명된다. 즉, 성수대교붕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90년대의 부패한 사회 제도, 사상 등을 상징하는 것이다. 90년대 사회는 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주의 그리고 학벌주의 앞에 약자가 되는 은희의 언니를 죽이지 않았다. 대신 이런 사상 앞에서 맞서 싸우라고 외치는 영지를 죽였다.

벌새 스틸컷 중에서

왜 우리는 <벌새>를 보고 불편함을 느끼는가?

이 영화를 26년 전에 봤더라면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 한세대를 30년이라고 한다. 90년대부터 한세대 넘어가는 시점에 있는 2020년도의 우리는 충분히 부당함을 인지하고 저항할 줄 안다. 아직 여전히 불편하지만, <벌새>는 용기 내서 부당함에 관해 이야기한다. 2020년에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벌새는 1초에 평균 80회 날갯짓한다. 여성들이 벌새처럼 애처롭게 노력하지 않아도 훨훨 날아오를 수 있는 사회를 맞이하기 위해선 더 많은 영화 <벌새>가 필요하다.

 

김한결
편집 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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