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글렌데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 소녀상은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앞 공원에 세워져 있다. 이는 2013년에 재미한인 윤석원씨를 주축으로 하여 세워졌으며,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것과 같은 형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에는 ‘글렌데일의 공격적인 동상을 철거하라’ 라는 제목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 서명이 벌어졌다. 그와 함께 일본의 정치인들까지 단체로 미국에 방문하며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일본군이 강제로 여성을 납치해 위안부로 삼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위안부 동원이 강제적이라는 허위 사실 때문에 혼란이 생기고 있다.’ 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백악관은 청원 후 한 달 만에 지지 서명 10만 명 이상을 받으면 관련당국이 공식 답변을 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이 청원은 3주 만에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도 이 사실을 알자마자 위안부 소녀상 철거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하였으며 다행히 2월 3일 안에 10만 명이 달성되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이 소녀상 옆에 ‘다케시마는 일본땅’ 이라고 적힌 말뚝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 눈물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으며 입에 담기도 싫은 사건이었다.
사진제공_KBS뉴스
우리는 이 소녀상이 철거되면 안 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가?
3.1절이 어떤 날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대다수인 현실 속에 우리는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에서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역사를 바로 알려고 노력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본군의 ‘위안부’ 제도는 여성의 성을 전쟁 수행을 위한 도구로 삼은 잔인한 전쟁 범죄이다. 이 ‘위안부’란 일제 식민지 시대 일본군의 위안소로 연행되어 강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을 말한다.
일제는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본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군대 위안소를 만들고 식민지와 점령지에 있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을 전선으로 보내어 그러한 역할을 강요했다. 글에 담을 수도 없고 담기조차 힘든 일을 당한 여성들 중 일부만이 귀국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전쟁 중 입은 정신적, 육체적 상처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2008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라 일본정부에 권고했지만 그들은 지금까지도 그러한 강제연행과 인권 침해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며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리고 1992년 1월 8일부터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것이 2011년 12월 14일 1천 번째를 맞이하며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평화의 소녀상’ 이 세워졌고 이러한 내용이 소녀상의 의자 옆 돌바닥에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사진제공_SBS뉴스
꿋꿋하게 일본 대사관을 마주보고 있는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흐르지 않는 피눈물을 흘리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에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
그 당시 강제로 끌려간 그녀들의 나이는 불과 15~17세, 지금으로 치면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며 미래를 꿈꾸는 순수한 여학생들 인 것이다.
꽃은 빛과 비와 공기로 자라난다.
좋은 것을 받고 사랑을 받은 꽃은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꽃과 같은 소녀들이 자라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한 순간에 머나먼 꿈이 되어 버리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들었던, 지옥 같았던 그 곳에서 소녀들은 꽃으로 피어나지 못했다.
소녀상의 발꿈치가 들린 맨발이 그녀들이 고향에 돌아와서도 한평생 다시 뿌리내리지 못하고 정착하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그 뿐 아니라 소녀상에서 표현 된 소녀의 모습은 잃어버린 삶과 짓밟힌 청춘을 표현한다. 가장 빛나야 할 시절을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어둠으로 보낸 소녀들의 안타까운 삶을 그린다.
에드 로이스 미국 연방하원 외교 위원장은 소녀상을 찾아 참배하고 국제 사회가 2차 세계대전 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다며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반성을 주문했다.
사진제공_연합뉴스
하지만 아직 더 우리에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미국 가주한미포럼을 이끄는 윤원석 대표는
“올해 안에 미국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기림비 2개를 더 세울 계획”
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평화의 소녀상은 반일운동 또는 분노의 상징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평화의 상징이라고 말하며 소녀상을 통해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일본 성 노예의 참혹한 역사를 알게 하고 인류가 지양해야 하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른 것 보다 우리가 먼저 그 당시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살아계신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동안 우리 국민들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잃어버린 젊은 시절에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인정하는 것과 진심 어린 사과이다.
자신의 조국의 땅에 두발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한 채 일본 대사관 앞에 앉아있는 소녀상. 피지 못하고 져버린 꽃인가. 아니다.
우리에겐 누구보다 아름답고 강하게 활짝 핀 꽃이다.
[에세이] “말문을 터라” EBS 다큐프라임,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 하슈(HASHU) (0) | 2019.10.27 |
---|---|
[사설] 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가? - 하슈(HASHU) (0) | 2019.10.27 |
[에세이] 미디어 매체를 통해 본 개방된 성문화 (0) | 2019.10.27 |
[에세이]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한 사람들 - 하슈(HASHU) (1) | 2019.10.27 |
[에세이] 취업=사회? - 하슈(HASHU) (0) | 2019.10.27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