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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이야기] 날 것의 음악 : 김진호, 《노래샘 (2019)》

문화예술

by HASHU 편집부 2019. 10. 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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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목소리 그리고 울림


김진호라는 가수를 오랫동안 보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그는 발전한다. 꾸준히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음악, 목소리 자체가 되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음악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한다. 음악은 곧 삶이고, 삶은 곧 공감이다. 사람들은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김진호의 목소리는 삶을 통과한다. 그것도 한 사람, 한 사람 쓰다듬으면서.

김진호가 작사를 했던 것은 SG워너비 시절부터다. 정확하게 <가족사진>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나 <사람들>처럼 솔직한 감정들을 담아내는데 소질을 보였던 것은 SG워너비 4집의 <아버지의 구두>부터였다. 그렇게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개인적 희망은 솔로 활동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김진호


김진호는 무대와 관객의 관계를 버렸다.

누군가가 상위의 관계를 지니지 않는다. 가수는 일상을 그리는 시인이 되었고, 팬은 음악적 동반자가 되었다. 이런 '내려놓음'은 대단한 결심 진정한 음악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김진호 본인의 신념이었고, 과거 1등을 밥 먹는 듯했던 SG워너비라는 타이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에게 더 이상의 관객은 없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타를 들고 병원, 학교, 공공시설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예전의 김진호가 섰던 무대보다 훨씬 작고, 음향시설도 좋지 않은 곳들이었지만 그때보다 행복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는 정말 자신의 희망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공유했다. 이러한 진심은 드물게 출연한 '불후의 명곡'에 비친 김진호의 모습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이제 목소리만으로 사람들을 울릴 수 있고, 감동할 수 있는 가수가 되었다. 본인이 부끄러워하는 수식이지만 2010년대의 김광석의 위치를 김진호가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목소리 엔터테인먼트

 

올해 5월 김진호는 약 2년 만에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엄마였다.

사실 정규앨범을 낸 지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나있었다. 2년 전에 냈던 곡은 <졸업사진>이라는 싱글이었으니, SG워너비 시절까지 생각하면 그가 정규앨범을 이렇게 오랫동안 내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물론 여러 활동을 하면서 본인은 바쁘게 지냈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자주 앨범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라는 싱글을 듣고 다른 음악을 오랫동안 듣지 못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목소리의 울림은 강한 여운을 남겼다. 그가 전성기를 이끌었던 기교도 아닌, 휘황찬란한 편곡도 아닌 가사와 진심에서 묻어 나오는 울림이 감동을 준 것이다. 객관적인 기준을 넘어서는 목소리의 울림이 있었다.《사람들》, <졸업사진>의 연장선에 있는 노래. 바로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 숨 쉬고 있는 노래였다.

그 이후 김진호는 5년 만에 정규앨범을 낸다고 이야기했다. 10월 3일. 이번 10월에 이상은, 넬(Nell)을 비롯한 쟁쟁한 가수들이 컴백한다고 했지만 내가 제일 기대했던 앨범은 김진호의 3집이었다. 골치 아픈 실험이나 현란한 편곡으로 덮여진 음악이 아닌 그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듣고 싶었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노래샘, 날 것의 음악


목소리 엔터테인먼트

폭죽은 흙이 돼 땅을 빛내겠지
하늘과 땅 그 사이에 머물던
우리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네

<폭죽과 별>가사에서

 

앨범은 기대하던 만큼의 기대를 해냈다. 오히려 그 이상일 수 있다.

오히려 새로운 실험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에 리얼리즘을 담았다. 지금 대중음악 생태계에서 보기 힘든 '날 것의 음악'을 가지고 온 것이다. 첫 트랙인 <낙서 (집에서 습작)>부터 이 날 것은 녹음된 그 현장까지 잡아내고 있다. 갇힌, 틀에 박힌 녹음실 아닌 진짜 낙서와 같았다. 노래를 들어보면 벽에 목소리로 낙서하는 가수를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곧 그 가수가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티비>는 <엄마의 프로필 사진>처럼 동일한 엄마의 이야기지만 외로운 사람들이 티비에 위로받는 상황을 묘사한 노래도 된다. 간결하게 피아노와 기타만 사용된 이 노래는 지금껏 김진호가 만든 곡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연출의 곡으로 보인다. 곡의 중간에 삽입된 '아이들이 놀이하는 소리'는 이 노래의 감정선을 반복적인 포크에서 끝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노래는 보란 듯이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김진호는 두 번째 벌스부터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가사가 끝나도 멈추지 않는다. 감정선을 한계까지 이끌어간다. 보정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까지 느낄 수 있다. 마치 라이브처럼. 진정한 울부짖음은 다시 '아이들이 놀이하는 소리'와 겹치면서 여운을 준다.

폭죽과 별


타이틀 곡 <폭죽과 별>에 와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보여준다.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폭죽을 재해석한 곡으로 시적인 가사를 지닌 곡이다. 김진호를 시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노래는 이전 앨범의 타이틀곡처럼 깔끔하고, 벌스와 코러스(브릿지)의 연결이 능숙하다. 그 안에서 기능하는 가사는 효과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희생'이라는 관점은 김진호 노래를 전면으로 관통하는 가족의 희생, 엄마·아빠의 희생과 연관을 지을 수 있다.

이 희생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연결된다. 이어지는 노래 <광고>를 통해 이를 노래한다. 이 곡은 아무런 편곡이 없다. 기타 하나로 연주되는 곡으로 말 그대로 포크다. 담담하게 우울한 삶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희생과 희망의 중심에서 헤매는 현대인을 이야기한다. 나는 나를 위해 희생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희망을 만나 그것을 따라가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무한성은 곡의 마지막, 페이드아웃에서 알 수 있다.

앨범에서 눈에 띄는 트랙은 바로 <고맙고도 미안해 (술자리에서 즉흥노래)>이다. 이 곡은 첫 번째 트랙의 과정과 연결된다. 누군가(친구)의 사랑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주는 상황을 아무런 필터 없이 보여주고 있다. 술자리의 어떤 상황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담아낸 경우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그래서 신선했다. 음악은 전혀 앨범의 분위기와 주제를 흩트리지 않고 김진호가 실험도 하는 아티스트임을 증명해냈다. 이 실험은 보정 없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면 할 수 없기에 더 값지다고 할 수 있다. 이 곡을 끝으로 앨범은 2부로 넘어간다.

2부의 시작은 <편의점 앞에서>라는 곡이다. 2부의 특징은 삶에 대한 희생보다는 스케치에 가깝다. <편의점 앞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추억 그리고 평범했던 장소에 대한 스케치이다. <집에 가는길>은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이 생각나는 코러스를 갖고 있다. 과거를 회상한다는 연출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곡이다.

<전화해줘>는 기타 연주가 중심이 된 그리움에 대한 스케치이다. 2부의 곡들은 대부분 정통적인 포크에 가까워 2집《사람들》의 후반부의 느슨함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노래들은 음악적 긴장감보다는 가사로 감정을 전달하는 기능을 하고 있어 음악적 창의력이 떨어져 아쉽게 느껴졌다.

나는 2부의 맺음말이 되는, 앨범의 타이틀이 되는 <눈물샘>는 작가의 말을 담았다. 잔잔하고 무슨 말이라도 해도 될 것 같지만 김진호는 "우리 다시 만나게 되면 결국 우리는 하나였다고 함께 노래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김진호의 노래는 모두가 만들어가는 것이 되고, 함께 노래하는 그런 음악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노래를 듣고 공감을 느꼈다면 김진호가 이야기하는 '우리'가 될 자격은 충분하다.

우리는 그렇게 사람들과 같이 노래하는 가수를 얻었다. 누구처럼 정치인을 쫓지 않고, 누구처럼 돈을 좇지 않는다. 이 앨범의 최고의 소득은 '사람을 쫓는 목소리'를 얻은 우리들이다.

장르: 포크, 발라드
발매일 : 2019년 10월 03일
기획사 : 목소리 엔터테인먼트
단위:
 정규앨범(LP)
러닝타임: 38분 13초

수록곡

수록곡

 01. 낙서 (집에서 습작)
 02. 티비 ★
 03. 폭죽과 별 ★
 04. 광고 ★
 05. 고맙고도 미안해 (술자리에서 즉흥노래) ★
 06. 편의점 앞에서
 07. 집에 가는 길
 08. 전화해줘
 09. 노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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