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플래쉬>는 미국 셰이퍼 음악학교에 다니는 앤드류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앤드류, 그리고 플레처가 생각날 것이다. 앤드류에게 플레처는 어떤 사람인가?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늘 폭언을 퍼붓는다. “저능아가 어떻게 입학했지?”, “쓰레기 유대인 새끼”.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앤드류는 플레처의 말처럼 친구도 없는 찌질이에, 엄마도 없다. 플레처를 만난 뒤의 앤드류는 친구도 없는 찌질이에, 엄마도 없고,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퇴학당했다. 앤드류에게 플레처는 선연일까, 악연일까?
앤드류는 플레처의 제안으로 JVC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다. 성공하면 ‘블루노트’랑 계약하고, ‘EMC’랑 음반 내고, 링컨 센터에도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찍히면 다신 음악계에 발을 딛을 수 없다. 플레처의 예상대로 앤드류는 무대를 망치게 된다. 그리곤 곧 무대에서 뛰쳐나간다.
하지만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다. 그는 다시 무대로 올라선다. 지휘자의 지휘를 무시하고 자신의 드럼으로 지휘를 시작한다. 플레처의 지휘를 따르던 사람들은 어느새 그의 드럼 소리에 따르게 된다. 그가 다시 무대에 올라 지휘할 수 있었던 것은 ‘플레처를 이기겠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의 드럼이 완성되며 끝난다. 영화의 결말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은 이러할 것이다. ‘플레처의 폭언과 폭력으로 앤드류의 드럼이 완성되었으니, 이 영화는 결과를 위한 폭언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인가?’
그의 인생에서, 그의 드럼을 위해서 플레처가 필요했는지 판단하려면 그에게 영향을 미친 다른 인물들도 알아보아야 한다.
우선 그의 가족들을 살펴볼 수 있다. 가족들은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트래비스를 반긴다. MVP가 된 트래비스를 칭찬하고, 모의 UN 사무총장인 더스틴을 칭찬하고, 올해의 교사인 짐까지 칭찬하며 재능이 출중한 사람만 모였다고 말한다.
앤드류는 ‘미국 최고의 밴드’에 속해 있지만, 가족들은 그를 무시한다. 그리고 그도 가족들을 무시한다. 가족들 간의 정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의 위치를 자랑하고 깎아내리기 바쁘다. 의미 없는 무시는 그에게 아무런 자극제도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그의 여자친구였던 니콜을 살펴볼 수 있다. 영화 초반 합주실에 들어간 앤드류의 눈에는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이 진하게 담긴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어 보인다.
이어 그는 플레처의 밴드에 합격한다.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받은 그는 니콜에게 데이트 신청을 성공한다. 니콜을 만난 다음 날 늦잠까지 자고 만다.
하지만 학교를 싫어하고 꿈이 없는 니콜은 그에게 자극제가 되지 못한다. 앤드류는 자신을 음악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은 여자친구는 그저 ‘방해’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앤드류 자신의 영향도 살펴보아야 한다. 영화의 시작, 앤드류는 드럼을 연습한다. 하지만 ‘죽도록’ 연습하진 않는다. 그의 드럼엔 그의 땀도, 피도 남아 있지 않다. 그는 드럼을 당당히 연습하지 못하고 죄송하다며 연주를 멈추는 겁쟁이일 뿐이다.
그는 스스로 ‘위플래쉬’ 하지 않는다. 보조 드러머, 언젠가 메인에 앉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천은 하지 못한다.
앤드류를 처음으로 인정한 건 플레처다. 자신의 밴드에 합격시키고, 첫 합주에선 ‘버디 리치 같군’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플레처의 칭찬을 들은 앤드류는 연주를 실수한다. 계속되는 실수에도 플레처는 템포가 안 맞지만 괜찮다며 그를 격려한다.
하지만 그의 드럼은 나아지지 않는다. ‘서둘렀을까, 질질 끌었을까’에 대답하지 않은 앤드류는 플레처에게 맞는다.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죽도록’ 연습하라고 말한다.
그날 밤 그는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한다. 밴드를 갈고, 갈고, 또 갈면서 연습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스틱을 놓고 만다.
노력에 운이 따라 그는 메인 드러머 자리를 얻어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악보는 놔둬라’라며 무시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무시는 그에게 자극제가 되지 않았다.
앤드류는 라이언에게 메인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플레처에게 인정도, 욕도 듣지 못한 그는 더욱 ‘죽도록’ 연습한다.
그는 플레처를 대신해 자신에게 욕을 한다. 스스로 ‘위플래쉬’ 하며 연습을 계속한다. 드럼을 부수어도 연습을 멈추진 않는다. 피가 흐르는 데도 스틱을 놓지 않는다.
그에게 라이언의 자리를 다시 얻을 기회가 생겼다. 그는 플레처에게 욕을 듣고 피를 흘리면서도 연주를 계속한다. ‘더 빨리’, ‘계속해’, 그렇게 그는 플레처에게 인정받는다. 다른 이들과 달리, 과거의 자신과 달리, 그는 끝까지 스틱을 놓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앤드류는 그가 따르지 않았던 플레처의 지휘를 다시 따르게 된다. 속도를 늦추고, 다시 올린다. 그와 눈을 마주치고, 그의 인정을 받은 순간, 앤드류는 미소 짓는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가족들에게도, 여자친구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도. 결국 그의 드럼을 인정해준 것은 플레처다.
앤드류에겐 ‘위플래쉬’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채찍질이 꼭 폭언이나 폭력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누군가의 관심, 인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에겐 플레처가 유일했다. 그는 플레처에게 인정받고 무시 받으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드럼 연주를 완성한 그의 얼굴엔 플레처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후련하고 기쁜 마음으로 플레처의 지휘를 따라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서, 그의 드럼에, 플레처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플레처의 교육방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묻고 싶다. 플레처가 없는 그의 삶은 발전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혹은 다른 이에게 플레처만큼의 ‘위플래쉬’를 줄 수 있는가?
글 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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