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은 재난 영화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속하고 있다. 우주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진 재난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들이 도출해내는 결말인 ‘주인공과 주변의 인물들은 결국 살아남는다’를 그대로 답습하며 휴머니즘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러나 <마션>의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멧 데이먼)가 재난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그를 구하는 지구의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재난 영화들과 어딘가 다르다.
<마션>의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 진행된다. 첫번째로 화성에서 조난을 당한 마크와 두번째로 마크를 구하는 나사의 직원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서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두 이야기를 적재적소에 교차시켜 진행시킨다.
화성에 홀로 남은 마크는 지금까지의 재난 영화들에서 보여준 주인공의 모습과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재난을 접하고 거대한 사고 앞에 숙연해지며 시작한다. 그 후에 힘을 합쳐 어둠 속에서 가까스로 한줄기의 빛을 찾아나가는 긴박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라는 쉴 수 있는 산소조차 없는 공간이 오히려 지구보다 긴장감이 낮은 공간이 된 이유는 주인공인 마크 때문이다.
재난이라는 분위기 속 이러한 낮은 긴장감이 화성에서 느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마크의 성격 때문이다. 모든 대원들이 떠난 후 희망이 없는 상황 속에서 좌절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 속에서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작은 새싹 같은 희망을 피운다. 극 중 마크가 떠난 동료들의 인분을 활용해 감자 싹을 보고 밝게 웃는 장면은 마치 <김씨 표류기>에서 남자 김씨가 본인의 인분과 새똥 속 씨앗으로 새싹을 틔우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를 비롯해서 마크 특유의 유머러스함도 극의 긴장감을 와해시키는 데 일조한다.
오히려 가장 긴박한 상황이 보여지는 장소는 안전한 지구의 사람들이다. 마크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지구의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마크를 구해 오려고 한다. 여기서 이 영화가 다른 재난 영화들과 차별화된 두번째 부분이 나오는데 바로 정치적 분쟁의 부재다.
현 시국 상 미국과 가장 충돌이 잦은 나라인 중국으로부터 아무런 정치적 분쟁 없이 도움을 받는 내용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의 우주 산업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구의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마크의 구조를 방해하는 요소는 경제적 부분과 과학적 부분뿐이다.(후에는 경제적 부분도 중국으로 인해 쉽게 해결된다.) 현실에서는 분명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의 요소들이 과감히 삭제된 것이다.
이때 남은 해결할 요소들은 과학적 요소뿐인데 이를 위해서 각 분야의 많은 인물들이 힘을 합치는 모습은 휴머니즘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와 동시에 과학적 효용성이 발휘되는 많은 장면들은 과학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렇게 필수적인 요소들을 오히려 배제시켜 그동안 상대적으로 경시됐던 요소를 빛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극 중 갈등의 거의 모든 상황마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그대로 유지시키지 못한다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는 매번 반복되어 가장 긴장감이 높은, 구조의 마지막에 마크와 루이스(제시카 차스테인)가 우주 유영 속 손을 잡는 장면의 카타르시스는 다른 재난 영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다. 영화 속 모든 선택들의 결과에 조금씩 오차가 있어도 어떻게든 인물들은 재난을 통제하고 극복해낸다.
그래서 <마션>은 ‘역행’하는 영화다.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모든 조건들이 마련되어 있고 방해 요소들은 제외되어 있거나 협력을 통해 사라진다. 이는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재난 시의 상황이며 그 염원은 대체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충분한 조건들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잊을 수 없는 4월 16일의 그 사고를 역설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 모든 신속하고 올바른 선택의 순간들과, 어쩌면 똑같은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생존자인 마크가 자신의 경험을 웃으며 말하는 장면들은 끔찍한 재난의 결과를 본 필자에게 허망하게 보인다. 그렇게 <마션>은 우리들의 모습과 완전히 뒤집혀 있다. 그 이유가 지구에서 일어난 재난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간절히 빌어본다.
글 파도일(견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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